[진심이 사라진 너와 나] 소개받기 싫은 이유

2018년 09월 02일 by 오늘 뭐 하지?

    [진심이 사라진 너와 나] 소개받기 싫은 이유 목차


한 남자는 예전부터 소개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소개를 받는다고 나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무언가를 감추고 나오기 때문이다.

소개팅이 잡혔다.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첫인상'.
우리는 그 첫인상을 잘보이기 위해서, 나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다. 자주 신지 않던, 구두를 신고.. 

날씨가 조금 시원하지 않은데도 셔츠와 마이를 갖추고..
조금은 무거워 보인는 메탈 시계를 차고 나간다.


안하던 화장을 하고, 높은 힐을 신으려니 벌써부터 종아리에 생길 알들이 너무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살이 안쪄보일려고, 숨을 참아야하는 일도 생각해볼 것이다.


혹여 힘을 주다가 방귀는 뀌지 않을지 다른 실수를 하지 않을지, 다시 한 번 마음속을 다짐한다.
거울앞에 선 나, 어딜봐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모습에, 화장이 잘 먹지 않았다는 등, 살이 쪄보인다는 이유로 내 자신을 꾸짖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되면, 내가 준비한 것 만큼이나..

상대방도 얼만큼 신경쓰고 왔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처음 만나는 대상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은 어느새부터인가 예의로 생각되어져왔다.
그 예의라는 선이 과연 어디까지 그어질지 모른 상태로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문화적으로 잡힌 매너있는 남자의 기준은 여자를 얼만큼 생각해주느냐이다.

그 얼만큼 생각을 해주느냐는 당연히 모른다.


 남자는 나보다는 여자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선뜻 물어본다. “혹시.. 뭐 좋아하세요?”

여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좀 신경써서 나왔는데, 이 남자는 리드하는게 없다고 조금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으론.. 배가 너무 고파서 ‘구워먹는 삽겹살에 소주를 먹고 싶은데..

’ 따뜻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어도 차마 ‘돼지’ 같아 보일 까봐' 말을 못한다.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수줍은 듯 말을 이어간다.

다시금 침묵이 흐른다. 남자는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여자는 ‘파스타’를 좋아한다' 라는 공식을 꺼내오기 시작한다. 

음식점에 나란히 앉아 꽤나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마음에 들길 기대한다.
마음에 들면 같이 좋아야해야 하는데,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난관이 들이닥쳤다. 

'세상에 파스타의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은거야?'


솔직히 남자는 파스타에 대해서 잘 모른다. 

평소에 집에서 먹는 라면과 치킨 그리고 가끔 친구들과 함께 먹는 삽겹살에 소주.. , 

헌팅을 실패해서 새벽같이 해뜨는 아침에 먹는 국밥들의 종류 밖에는 관심도 없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파스타 공부라도 해올걸..’ 괜히 불안해 떨기시작한다. 


크림파스타가 인기가 많다고 했나..? 아닌가? 이 로제라는 단어는 무슨 뜻이지? 짧은 고민 끝에서 말이 나온다.

“먹고 싶은거 드세요! 여긴 제가 살게요!”


공격과 수비가 모두 적절히 갖춰진 말로 위기모면 한다.
찰나의 순간 내 자신의 반응에 놀라고 내 자신이 대견스러운 남자
여자가 먹고 싶어하는 메뉴가 제발 이 가게에 존재하길 바라면서 또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여자는 생각한다. 

'아.. 여기 인스타그램 맛집이래서 친구들이랑 저번에 왔었는데, 여기는 맛있는 메뉴가 너무 많아. '


‘일단 저 사람은 여기에 처음 와본 것 같으니까 나도 모르는 척 해야 예의겠지?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데..’


‘이걸 먹으면 남자가 나를 뭐로 볼까? 두 개 시켜버리면.. 안돼! 하.. 씨.. 진짜 뭐먹지...’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선택장애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동공이 흔들린다.

그런 눈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벌써부터 초조하다.

‘식당이 마음에 안드나...?’ , ‘여기 괜찮다고 했는데!!’


이 가게를 알려준 친구놈이 괜히 밉기만하다.


‘아, 오늘도 점수 따기는 글렀구나..’

동공지진과 초조함이 섞인 양쪽의 고민 속에
남자가 참다 못해 궁금해서 물어본다. 


“뭐.. 마음에 드는게 없어요..?”

“아니요.. 저는 그럼 이거요...”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메뉴가 눈에 들어오는데, 행여 먹으면서 옷에 튈까봐, 손으로 집어먹는 것이면
야만적일까 고민 끝에 고른 메뉴..

지난번에 친구들과 먹었던 크림파스타다.

남자는 크림파스타를 고른 여자를 보고 생각한다.


‘그럼 그렇지! 역시 여자는 파스타구나! 여기 데려오길 잘한 것 같아.’


한 껏 자신감이 앞선 남자는 쏟아내고 싶은 질문을 하나 둘 씩 꺼내기 시작한다.
조급해하지 말자..

“아 참! 어디 살아요?” 

“아.. 저요? 근처에요"


“아 그래요? 저도 이 근처에 사는데, 친구가 여기 되게 괜찮다고 해서 온건데, 처음와봤어요."

남자의 눈에 보이는 저 초롱초롱한 아이같은 눈빛에
여자는 당황스럽다.


“아 네...”

‘아’로 시작하는 문장이 벌써.. 몇 문장이 되는건지..


그렇게 둘은 서로에 대해서 겉모습만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래 오늘은 처음이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어색함 때문에 오가는 눈치의 속으로 스며드는 속마음들이
파스타 크림이 면발에 스며들어 없어지 듯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면이 불어버렸다.

“밥 사주셨는데... 커피는 제가 살게요.”


“괜찮아요! 제가 사도 되는데요.”


남자는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에서, 오늘 나와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뜻에서 

이 여자를 보내고 싶지않았다.

굳이 사주겠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예의상 못 이기는척,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짓지만 갑자기 조금은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시간나면 영화 보자고 하겠지...?’

말 끝나기 무섭게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뻔하디, 뻔하다.


자연스러운 공감대 형성은 당연 영화가 최고다.
늘 그래왔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 처럼

‘주말에 보자고 할텐데.. 시간이 되려나... 최근 개봉한 영화가 뭐 있지...?’ 여자는 고민한다.

여자의 고민하는 표정에 남자는 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좀 급했나? 실수했나? 커피산다고 할 때, 내가 부담을 줬나?’

‘내가 마음에 안드는게 아닐까?’


‘처음부터, 첫인상이 별로였었는데 예의상 식사는 같이한건가??’

남자는 혼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여자의 표정에 점점 더 해져가는 나의 물음표의 숫자만큼
남자의 마음의 침울함도 더 많이 깊어진다.

애써 괜찮은 척.

‘바쁘면, 다음에 시간날 때 같이봐요.’

‘다음에’

남자가 가장 하기 쉬운 아쉬울것이 없다는 듯, 쿨해보이려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을 잡는다.


마음속으로는 그저 시간날 때 연락해주길 기대하면서..

남자는 속이 타드는 만큼 목도 타기 시작한다.


평소에 쓰다고 느껴지던 아메리카노가 오늘따라 유난히 달고, 잘 넘어간다.

‘이 사람도 일 할텐데.. 주말에는 바쁘지 않은가? 그래도 나한테 관심있으니까 시간내서 보는 거 일텐데...’

‘집에가서 영화 뭐있나 봐야겠다’

정적이 흐른다.



“그래요.”


“아 참.. 저기... 죄송한데 저 조금 있다가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가보셔야겠네요!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주세요.”

또 애써 쿨한척..

오늘 남자는 자신을 숨긴 새빨간 거짓말을 몇 번했는지 모른다.


그런 탓일까 왜이리 코가 간지럽지.. 피노키오가 되려나?

남자의 마음속이 급한 만큼, 흐르는 시간 또한 급하게 느껴진다.

핸드백을 챙겨..카페 밖을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도..

마치 자리를 피하듯 급하게 정리하고 급하게 나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나는 최선을 다했어.. 매너도 잘 지킨 것 같고..’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역시 내가 별로였을 수도...’

조용한 카페 속 한 기사는 투구를 벗고 검을 내려놓는다.

그녀의 운전기사는 되지못하더라도,
그녀의 뒷모습 마지막까지 지켜봐주는 기사가 되리라.

고요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핸드폰에 알림음에 집중하다보니.. 유난히 오늘 따라 시계 속 초바늘 소리가 잘 들린다.

“까똑!”

올 것이 왔구나!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뭐해 병신아, 소개팅 어땠냐? 잘됬냐?”

팔뚝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답변하기도 싫다.

내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나보다 친구들이 더 난리법석이라 대화방이 불타올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으로 난무하는 친구들의 대화 속에 놀림감이 되버렸다.

“야, 여자는 많아.” 라며 달래주는 듯하면서도 별 신경쓰지말라는 친구

내 마음을 정말 알고 있는 놈인지 참 머릿속이 궁금하다.



‘누가 그걸 모르냐, 가벼운 만남이 싫은거지...’



“괜찮아, 내가 별로 인가보지 ㅋㅋㅋㅋ”



또 애써 태연한척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술이나 마셔야겠다. 지나가다 근처 맥주집에 들렸다.

안쪽 구석에 앉아혼자 500 생맥주를 시켜놓고

가게의 분위기에 따라 나도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은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다음주 출근해서 해야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 속의 공허함이 남은채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그렇게 오늘 하루의 기억은 아무렇지 않게 지워져만 갔다.

여자도 약속이 끝나고 근처의 맥주집에 들렸다.

오늘 만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나한테 관심있어보이는 것 같던데...’


‘지금까지 소개받은 남자와 똑같은 래퍼토리에 트라우마를 느낀채, 머릿속이 복잡하다.
‘영화 보면 술 마시자고 하겠지...?’ 


‘너무 빠른가 아닌가...’


‘오늘 살쪄보이진 않았나? 남자도 애써 괜찮은 척 하던데..’


‘하도 질문이 들어오는 탓에 정작, 내가 궁금한 건 못 물어봤네.’

“세상에 널린게 남자야.”라는 친구들과의 수다 속에서 머쓱 쓰다듬는 머릿결을 뒤로한채, 

알딸딸한 흑맥주에 감각이 무뎌져간다.


“역시 맥주는 코젤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없이 어두운 길 골목에 터벅터벅 혼자 걸어가고 있다.

가로등 불 빛 속에 저 멀리 누군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저 사람도 내 기분과 같아서 술 한잔 했겠지...?’

그렇게 땅을 보며 걸었다.

머리를 긁적이고, 머릿결을 넘기려는 그 때
어디선가 많이 봤던, 옷차림이 보인다.

“어......”

잠깐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취했는지 감각도 더디다..


“저기요.”


남자는 술의 힘을 빌려서,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메뉴 별로였어요? 전 별로 였는데... 전 고기를 더 좋아해요. 냄새는 베이지만, 그만큼 친근한게 없고 구워지는 그 향기만으로도.. 행복하잖아요...”

여자는 당황했다. 


“왜 말 안했어요?”


“그쪽이 뭘 좋아하는지 말 안했잖아요...”


“저는 아무거나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멍청하고 못난이 바보라서 잘 몰라요..”


입술이 삐죽 나온 남자..



“...”

“아, 미안해요. 이러면 안되는데, 제가 취했나봐요.하도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요.”



“네.. 저두요...”



그렇게 발걸음을 서로 뒤로 한채, 각자의 길로
가려진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남자는 넥타이를 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맛있는 고깃집 데려갈 걸... 회사앞에 진짜 맛있는데...’

‘내가 왜 그랬지... 아 몰라..술이 원수지...’

갈리지는 목소리에 베개를 끌어안고 그렇게 밤이 들었다.


고요하고 초바늘이 여전히 들리는 어두운 방안에 아무도 모르게 빛이 났다.

“까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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